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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이봉희 교수'의 내 마음을 만지다(내가 나를 외면하다)
  • 작성일0000/00/0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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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나를 외면하고 있다 -자아의 감옥

※ 본 글은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카페『내 마음을 만지다』p.69-74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살다보면 무기력한 내 자신이 유독 괴롭게 느껴지는 날이 있습니다. 마치 새장에 갇힌 새처럼 날개가 있으나 날지 못하는 듯한 기분이 들 때가 그렇습니다. 스스로는 문을 열 수 없는 새. 그게 바로 나 자신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쩌면 문은 열려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왜 나는 나만의 감옥에서 걸어 나가지 못하고 있을까요?
 '절망이 습관이 되어서 이젠 문이 열려 있는데도 무기력하게 앉아만 있는 것은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던 날, 나는 책상 앞에 앉아 그림을 그렸습니다(가끔 마음 깊은 곳에서 호소하는 이야기들을 표현할 언어를 찾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림을 그려봐도 좋습니다. 이때 그리는 그림은 남에게 보이려는 게 아니라 내 속에서 솟아나오려는 언어에 목소리를 주기 위한 것이니 자유롭게 그리면 됩니다). 새장을 그리고, 열린 문을 그리고, 횃대에 문을 외면한 채 눈을 감고 돌아앉아 있는 새를 그렸습니다. 그래도 아직은 희망을 그리고 싶었는지 파랑새로 그렸습니다. 그런데 어느새 쇠창살을 그리는 대신 나무들을 그려 넣고 있었습니다. 숲이었습니다. 비록 나뭇잎이 무성하지는 않아도 새가 갇힌 곳은 새장이 아니라 숲이었습니다. 그림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새는 갇혀 있는 것이 아닌지 몰라. 맘껏 날 수 있는데, 스스로 눈을 감고 새장에 갇혔기 때문이라며 자신의 무기력을 합리화시키고 있는지도 몰라.'
 그런데 그림을 다시 바라보니 어쩌면 내가 갇힌 쇠창살 감옥이 고통스러워서 나도 모르게 그림 속에 숲이라는 환상을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자유로운 새 한 마리 바람의 등을 타고
 바람의 물결 끝나는 곳까지 날아간다
 오렌지 햇살에 날개를 담그고 감히 하늘을 제 것이라 한다.

 하지만 좁은 새장 안을 서성이는 새는
 분노의 창살 너머를 보지 못해
 두 날개는 잘리었고 두 발은 묶이었으니 목청을 열고 노래한다.

 새장에 갇힌 새는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로 노래한다
 미지의 것, 그러나 아직도 갈망하는 것들을
 그의 노래 먼 산 언덕에 퍼지네
 새장에 갇힌 새는 자유를 노래하기에.

 - 마야 안젤루. <나는 왜 새장에 갇힌 새가 노래하는지 알고 있다>

내가 날지 않으면 열려 있는 문도 닫혀 있다

 어떤 경우든 문은 열려 있습니다. 그러니 나는 날갯짓을 해야 합니다. 내가 스스로 나를 가둔 이 자아의 감옥에서 나와야 합니다. "오직 날개만 죽음을 피해 달아난다"고 네루다 Pablo Neruda는 말합니다. "사람은 날지 않으면 길을 잃는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밖으로 날아갈 수 있을까요?
 우선 현실을 대면해야 합니다. 스캇 펙Scott Peck에 의하면 정서적인 질병이란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라도 현실을 '외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반면 건강한 정서란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현실을 '대면'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무엇보다 내가 먼저 대면해야 할 현실은 나의 무력함입니다. 나 혼자 힘으로는 어찌 해볼 도리가 없는 일도 있다는 무력함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의 두려워하는 마음과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는 결코 수치스러운 일이 아니며 인격적 결함도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진정한 '인간'이라는 증거일 뿐입니다. 시각장애인 퇴역장교 프랭크(알파치노 분)와 모범생 소년 찰리의 우정을 그린 영화 <여인의 향기>를 기억하는지요. 프랭크는 자살을 시도하면서 이렇게 자신을 자책합니다.
 "나는 나쁜 인간이야. 아니야. 나쁜게 아니지. 아예 썩은 인간이지."
 그러자 찰리가 말합니다.
 "당신은 나쁜 게 아니예요. 다만 고통 받고 있을 뿐이예요."

 현재의 문제에 직면해야 한다

 어린 딸아이 앞에서 휘청거리며 무너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는 안 되는데 말입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부모가 자신에게 기대는 순간 자신이 기댈 부모를 상실했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평소 딸아이의 표현대로라면 "내일 지구가 멸망해도 두려움이 없을 것 같았던"엄마였는데, 그렇게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너무 미안했습니다. 다른 사람이면 몰라도 딸아이에게만큼은 엄마로서 약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습니다.
 "미안해, 요즘 엄마한테 실망했지?"
그러자 딸아이가 말했습니다.
"난 지금의 엄마가 훨씬 인간다워 보여. 그러니까 엄마, 눈치보지 말고 맘놓고 절망해. 지금 상황에서 아무렇지도 않다면 그건 사람이 아니잖아."
 그 말은 어떤 어른의 충고보다 훨씬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어릴 때 읽었던 "승리를 말하는 자 누구냐, 다만 견딜 수 있을 뿐"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직면해야 하는 현실은, 바로 삶은 우리가 받아들여야 하는 실존적 한계상황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이 건강해지고 치유된다는 것은 그런 현실, 즉 한계상황을 받아들이는 일입니다. 철학자 얄롬 Yalom은 말합니다.
 "삶은 때로 불공평하고 불공정하다: 고통과 죽음으로부터의 탈출구는 없다: 아무리 타인과 친밀할지라도 나의 삶은 여전히 나 홀로 직면해야 한다: 나는 나의 삶과 죽음의 문제를 직면해야 한다: 따라서 보다 정직하게 살아야 하며 사소한 일에 얽매여서는 안된다: 타인들의 도움과 상관없이 내 삶의 방식에 궁극적인 책임은 내가 져야 한다."
 때로는 나보다 큰 존재에게 도움을 청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이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어린아이임을 인정하고 부모의 손길과 도움을 바라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나보다 더 위대한 초월적 존재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때 위대한 존재란 단지 힘이 있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인격적인 완전함과 선함, 나의 연약함을 나보다 더 잘 알고, 그 모든 것을 용서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무한대의 사랑을 다 어우르는 말입니다. 도움이 필요하다고 적극적으로 표현하십시오. 어린아이가 어른인 체하며 모든 것을 혼자 처리하려다가 오히려 무력감에 빠지거나 수치심에 스스로를 고립시킨다면 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그리고 하고 싶은 일들 중 작은 일부터 시작하십시오. 온몸으로 햇살을 느끼며 산책을 하고,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워보는 것입니다. 친구가 없다면 일기장에 자신의 마음을 맘껏 털어놓으십시오. 마음에 위로를 주는 시나 책을 읽어도 좋습니다. 나를 위해 투자하는 일을 저버리지 마십시오. 문은 열려 있습니다. 새장에서 나와 조금씩 나는 연습을 하십시오. 익히다는 의미의 한자 '習(습)'은 창공을 나는 새의 날개를 뜻합니다. 용기 내어 날갯짓을 해보십시오.맘껏 숨 쉴 수 있도록 무한한 빛의 벌판으로 나오십시오.

 사랑하는 이여, 잠에서 깨어라
 잠든 네 가슴에 친절을 베풀어
 광활한 빛의 벌판으로 데리고 나가라
 살아 숨 쉴 수 있도록

 - 하피즈 Hafiz