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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속마음은 누가 알아줄까?
  • 작성일0000/00/0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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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이봉희 교수의『내 마음을 만지다』(생각속의집)p.160-163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우리가 진정 원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는 것은 스스로도 그 욕구의 본질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는 다른 곳에 그 욕구를 전이시켜 거짓 욕망에 집착합니다. 배가 부르면서도, 비만으로 건강을 해친다는 것을 알면서도 초콜릿이나 군것질을 달고 살거나, 술이나 게임 등에 집착하는 경우입니다. 그 순간 초콜릿을 먹지 말라거나 게임을 하지 말라고 아무리 설득해도 효과가 없습니다. 그보다는 그 사람이 진정 원하는 것을 탐구하도록 도와주고 그것을 먼저 해결해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거짓 욕망에 대한 강박증은 사라집니다. 이런 강박증은 때로 사람에 대한 지나친 집착을 보이기도 합니다.


 친정어머니는 손녀를 유달리 사랑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지나치셔서 나는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습니다. 매일같이 전화를 하셔서는 "오늘은 애한테 뭐 먹였니?"라고 물어보셨습니다. 불고기를 해주었다고 하면 "야채를 먹여야지!" 하고 화를 내셨습니다. 다음 날 야채 반찬을 해주었다고 하면 "고기를 먹여야지!"하고 또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무슨 대답을 해도 단번에 만족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런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말만 시작하면 다 듣기도 전에 벌써 화부터 났습니다. 때로는 전화수화기를 귀에서 멀리 떼어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안톤 체호프의 <비탄>이라는 단편소설을 읽게 되었습니다. 책의 한 구절에서 나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주인공 포타포브는 이제는 너무 늙어 일하기 어려운 마부입니다. 그는 얼마 전 사랑하는 아들을 잃었습니다. 그가 늙어서 말을 제대로 몰지 못하자 마차에 탄 젊은 청년들이 노인에게 심한 모욕을 주며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합니다. 그런데 그는 그 모욕적인 행동을 느끼지 않고 다만 소리로만 듣습니다. 그리고는 "허허, 참 유쾌한 젊은이들이야" 하고 웃어버립니다. "느끼지 않고 다만 말을 듣기만 한다"는 한 구절은 소설의 주제와 무관하게 큰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때로는 해석하지 않고 소리로만 듣기


 나는 어머니를 생각했습니다.
'나는 왜 어머니의 말을 일일이 들리는 대로 해석해서 감정적으로 느끼고 반응했을까? 그냥 단순히 소리로만 들으면 되는데.'
 어머니의 지나친 간섭은 고기를 먹여도, 야채를 먹여도, 그 무엇을 해도 성에 차지 않을 만큼 아이를 사랑한다는 말의 표현임을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내가 얼마나 네 딸을 사랑하는지 알지?'라는 어머니의 소리 없는 진심이 무시당하자 어머니는 나름대로 욕구불만이 쌓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 진심을 알아달라고 점점 더 엉뚱한 잔소리를 하신 것입니다. 그 후부터는 어머니의 간섭과 잔소리에도 나는 평화로워졌습니다. 그렇게밖에는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어머니가 안쓰럽기도 하고, 또 아이처럼 귀엽게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알았어요, 알았어. 울 엄마, 손녀 사랑은 알아줘야 한다니까"라며 웃으며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 그런데 내게 찾아온 평화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느 날부터인가 어머니의 간섭과 잔소리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입니다. 간섭과 잔소리로밖에는 표현하지 못한 자신의 진정한 사랑과 욕구를 알아주자 어머니는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의 변화로 어머니도 변하셨던 것입니다.


 내 속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은 날이면 새삼 삶이 쓸쓸하게 느껴집니다. 때로는 알 수 없는 누군가를 향해 섭섭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칼 융 Carl Jung은 "고독은 내 곁에 아무도 없을 때가 아니라 자신에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을 의사소통할 수 없을 때 온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겉으로 들어난 말 너머 침묵하는 말에도 귀 기울이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자신도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서로의 욕구를 읽어주고 들어준다면 우리의 삶이 훨씬 더 따듯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