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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무언가 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곳에 그냥 있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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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마셜B. 로젠버그의『비폭력대화』(바오)p.139-142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의 경험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것을 말한다.
인간관계에서 공감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가진 선입견과 판단을 떨쳐버린 후에야 비로소 가능해진다. 오스트리아 태생 이스라엘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삶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존재의 질'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한다.
 "모든 삶의 국면은 서로 비슷한 점도 많지만 항상 갓난아기와 같이 이전에는 없었고, 절대로 다시 볼 수도 없는 새로운 얼굴을 가진다. 그래서 삶은 당신에게, 사전에 준비할 수 없는 반응을 요구한다. 과거에 있었던 어느 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것은 존재감, 책임감, 곧 바로 당신을 요구한다."


 공감에 필요한 마음가짐을 유지하기는 쉽지 않다. 프랑스 작가 시몬 베유는 이렇게 주장했다.
 "고통받는 사람에게 관심을 가질 수 있는 포용력은 아주 드물고, 실행하기 어렵다. 그것은 거의 기적과 같은 일이다. 사실 기적이다. 스스로 포용력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대부분 그렇지 않다."
 
 우리는 공감하는 대신 조언을 하거나 상대방을 안심시키고 싶은 강한 충동을 느끼며, 우리의 견해나 느낌을 설명하려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공감이란 우리의 모든 관심을 상대방이 말하는 것 그 자체에 두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방이 자신을 충분히 표현하고, 이해 받았다고 느낄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주는 것이다. 불교에는 이러한 능력을 적절히 묘사하는 말이 있다.

"무언가를 하려고만 하지 말고 그냥 그곳에 있어라."




 우리는 곧잘 상대방이 안심하고 싶어하거나 "이렇게 해봐"하는 조언이 필요할 거라고 추측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공감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좌절감을 안겨줄 수 있다. 이 문제에 관해 나는 딸에게 배운 것이 있다. 내 딸은 안심시켜주는 말이나 조언을 하기 전에 먼저 상대방이 그것을 원하는지 물어보라는 교훈을 가르쳐주었다.


 하루는 내 딸이 거울을 보면서 "난 돼지처럼 못생겼어"라고 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그렇지 않아. 너는 하느님이 지구상에 창조한 얼굴 중에서 제일 멋지고 예쁜 얼굴이야"라고 했다. 딸은 화난 얼굴로 나를 쏘아보면서 "아이, 아빠!" 하고 소리치고는 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나중에 나는 딸아이가 공감을 원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상황에 맞지 않게 안심시켜주는 말을 하는 대신, 이렇게 물어볼 수 있었다.
"오늘 네 모습에 실망했니?"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 사람의 이야기가 우리 머릿속에 있는 어느 이론과 어떻게 맞는지를 생각하고 있다면, 우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이지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다. 공감의 열쇠는 바로 우리의 존재다. 곧 그 사람 자신과 그 사람이 겪는 고통에 온전히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이 점이 지적인 이해, 혹은 동정(sympathy)과 공감이 다른 점이다. 때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느낌을 같이 느껴주고 이들을 동정하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공감하는 것이 아니라 동정한다는 것을 자각하면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