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넘어질 권리가 있다 -실패의 힘
- 작성일0000/00/00 00:00
- 조회 1,100
※ 본 글은 이봉희 교수의『내 마음을 만지다』(생각속의집)p.249-253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어느 날 직장에 다니는 제자가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선생님, 요즘 들어 마치 제가 먼지처럼 회사에 붙어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몇 가지 실수로 요즘 많이 힘들었거든요. 게다가 제가 하는 일은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일이어서 특별히 내세울 게 없어요. 그래서 성과 위주로 능력을 평가하는 인사고과에서 늘 뒤처지고 말아요. 모두가 인정받는 곳에서 저만 부족한 사람인 것 같아요. 그래서 부끄럽고 외로워요. 실수를 할까봐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하고, 그러다보니 어느새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도 못하고 있어요. 모두들 어떻게든 잘하려고 열심인데, 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무의미한 존재로 어정쩡하게 회사에 붙어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먼지처럼, 오물처럼 말이예요."
편지를 읽고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내 자신이 먼지처럼 작게 여겨지는 순간들, 누구가 살면서 때때로 느껴지는 감정입니다. 해변의 수많은 모래알 중 하나처럼 작고 초라한 존재. 세상 사람들은 모두 환하게 웃고 있는데 유독 나만 실패자인 듯 우울하고 힘 빠지는 날도 있습니다.
이른 아침에
먼지를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제는 내가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래도 먼지가 된 나를
하루 종일
찬란하게 비춰주셔서 감사합니다
- 정호승, <햇살에게>
하지만 정호승 시인은 그런 먼지를 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이른 아침 먼지를 보는 일이 뭐 그리 감사할까 싶은데도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먼지처럼 무시하고 쓸어버릴 수 있는 일상의 아주 작은 존재들을 볼 수 있게 해주시니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그것들을 통해 나 역시 먼지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나도 실패할 수 있다고 인정하기
어릴 적 구멍 난 창호지 문 틈새로 한 줄기 눈부신 햇살이 들어와 방 안에 꽂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 빛줄기 속에서 작은 별들이 모여 끝없이 옹알대며 은하수처럼 흐르고 있었습니다. 평소 더럽다고 쓸고 닦아내기 바쁜 먼지들이 그렇게 어여쁘게 빛나는 것은 바로 햇살 때문이었습니다. 아침에 눈을 떠 꿈쩍 않고 기다리는 거대한 세상 앞에 설 때마다, 우리는 자신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 존재인지를 깨닫습니다. 그런 나의 모습을 깨닫는 일은 절망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나를 겸손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겸손이란 "나는 못해"가 아니라 "나는 할 수 있어.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는 일도 있어. 나에게도 실수할 권리가 있어"라고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이런 겸손함은 오히려 두려움 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용기가 됩니다. 용기란 실패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는 긴긴 인내를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독일어로 인내란 '긴 용기 lang Mut'를 뜻합니다. 우리가 겪는 실패와 좌절, 그리고 고통은 인내를 만들어 냅니다. 그 긴 인내의 터널을 통해 우리는 소망을 이루어 갑니다. 그 소망을 향해 오늘도 나는 실패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며, 당당히 하루를 여는 용기를 주시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까요.
축복 benediction은 라틴어의 '누군가에 대해 좋은 bene말을 한다dictio'는 뜻에서 나온 말입니다. 인간의 가장 큰 욕구 중 하나는 바로 타인에게서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정받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헤겔은 인간이 존재하도록 동기를 부여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타인으로부터 받는 인정'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생명력이 되는 좋은 말이란, 나의 업적이나 재능, 혹은 성공에 대한 인정이나 칭찬 그 이상입니다. 그것은 있는 그대로의 나의 모습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입니다. 먼지 같은 나라도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는 것을 말합니다. 만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 누구에게도 좋은 말을 듣지 못한다면, 즉 인정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마치 햇살을 받지 못한 새싹처럼 제대로 자라지 못해서 꽃도 피우지 못하고, 열매나 씨앗도 맺을 수 없을 것입니다. 아마도 우리 안에 존재하는 긍정적이고 창조적인 생명력이 싹을 틔우기도 전에 시들시들 말라버리고 말 것입니다.
나를 그대로 긍정하고 축복하기
헨리 나우엔 Henri Nowen은 누군가를 축복하는 일은 그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긍정해주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합니다. 긍정이란 당신은 사랑스러운 사람이라고 그 존재 자체에 대해 "예스"라고 말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늘 서로를 인정해주고 축복해주어야 합니다. 항상 서로를 찬란하게 비춰주어야 합니다. 살아가면서 햇살 같은 축복이 절실할 때는 자신이 먼지처럼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입니다. 그럴 때 축복의 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모두 그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먼지처럼 작은 존재이지만, 동시에 별처럼 반짝이는 존재입니다. 작은 문틈으로 축복같은 햇살이 찾아와 나와 함께해주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오늘의 햇살로, 또 내일은 내일의 햇살로 절망의 순간에도 나를 포기하지 않는 그 찬란한 빛이 날마다 우리를 축복해주기 때문입니다.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예스"라고 긍정해주기 때문입니다.
살다보면 내 의지와 상관없이 발을 헛디뎌 넘어질 수도 있습니다. 잘해보려고 애썼지만 실패의 쓴맛을 보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자신이 먼지처럼 한없이 작고 초라하게 느껴진다면 마야 안젤루 Maya Angelou의 시처럼 이렇게 말해보십시오.
당신들 나를 땅에 눕혀 짓밟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나, 먼지처럼 일어나리라
(.....)
자꾸 솟는 달처럼 해처럼
어김없이 밀려오는 조수처럼
높이 솟는 희망처럼
그래도 나, 솟아오르리라
- 마야 안젤루, <그래도 나는 일어서리라 Still I Rise>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