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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으로 산다는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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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김혜남 교수의『어른으로 산다는것』(걷는나무)p.153-156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아이들은 빨리 자라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어른처럼 입고, 어른처럼 행동하며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어른처럼 옷 입거나 치장하고, 어른들의 행동을 아무리 흉내 내도 아이는 아이일 뿐이다.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기다려야 한다. 그 기다림의 시간 동안 많은 일을 만나고 더 넓은 어른들의 세상과 부딪히게 된다. 그 속에서 좌절과 실망도 경험하고, 세상은 그리 만만하지 않으며, 어른들이 그다지 힘이 센 것도 뭐든지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살아오면서 어른이 되었구나,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주민등록증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꼬박꼬박 받던 용돈이나 세뱃돈이 뚝 끊겼을 때, 더 이상 학생이라는 말을 듣지 못할 때, 부당한 일을 조목조목 따지게 되었을 때, 공중목욕탕에서 욕조 안의 물이 시원하게 느껴질 때, 세상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는 걸 알았을 때, 어릴 적 꿈이 가물가물해질 때......
 
 어른이 된다는 것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고 책임져야 하는 무거운 현실의 짐들을 등에 짊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주어진 현실안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지혜와 기술을 익히는 것이다.
 어릴 때는 되고 싶은 것들이 참 많다. 크게 성공하여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화려한 모습을 상상하기도 하고, 때론 모든 것을 희생하며 헌신하는 테레사 수녀 같은 성자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한다. 그 시절에는 비록 불확실하고 불안했지만, 앞으로 자신이 될 지도 모르는 모든 가능성이 끝없이 펼쳐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어른이 된 실제 모습은 꿈꾸던 것과는 차이가 많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그 꿈과 현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고 고통을 이겨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어른이 된다는 것이 아이 때의 달콤했던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다는 뜻은 아니다. 아무리 어른으로서의 지혜와 힘을 가져도, 또 어른으로서 받아들여야 할 현실이 있다 해도, 진정으로 '건강한 어른'은 가끔 어린아이로 되돌아 갈 수 있어야 한다.
 건강한 어른은 떠날수도 있고 혼자 남겨질수도 있어야 한다. 또한 관계의 소중함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과 다양한 관계를 맺으며 사랑도 하고 다른 사람에게 기댈 수 있어야 한다.
 건강한 어른은 자신이 사랑스럽고 가치 있으며 성싫다고 느낀다. 그리고 자신은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이며 어떤 상황에 있든 늘 흔들리지 않을 자아 정체성이 있음을 믿는다. 그리고 자신을 무기력하고 나약한 사람이 아닌 자기 인생을 결정짓고 책임질 줄 아는 씩씩하고 능동적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한 어른은 인생을 단순하게 봤던 어린 시절에서 벗어나 다양한 세상 경험을 거치면서 여러 각도에서 인생을 폭넓게 바라본다. 또한 자신의 의견과 반대되는 것도 중요한 진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건강한 어른은 양심과 죄책감을 느끼고, 후회하는 능력과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능력도 갖고 있다. 그리고 즐거움을 추구하고 즐길 수 있으며, 고통에 맞서 싸워 헤쳐 나가기도 한다. 원하는 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 지 배우며, 이룰 수 없는 것은 과감히 포기할 줄도 안다.
 건강한 어른은 잃는 것이 있으면 얻는 것 또한 있다는 사실을 안다. 잃어버림으로써 얻을 수 있고, 좌절에서 희망을 찾아내며, 불완전함 속에서 감사와 용서를 배운다.
 건강한 어른은 인생이란 완벽하지 않으며,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내가 잘났다고 혼자 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서로 부딪히며 때론 승자가 되고 때론 패자가 될 수 밖에 없는 복잡한 현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의 욕심을 적절히 조절하며 행복을 찾고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이루려고 노력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세상은 내가 바라는 대로 움직인다는 어린 시절의 전지전능함을 포기해 가는 과정이다. 그리고 무엇이든 가능할 것만 같았던 어린 시절의 꿈을 떠나보내는 과정이다. 또 어떤 잘못도 용서받고 어떤 나쁜 일이 일어나도 누군가 해결해 줄것이라는 어릴 적의 기대를 포기하는 과정이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세상, 어떠한 위험도 없이 안전하게 보호받는 세상,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함 그대로 즐겁게 지낼 수 있는 세상은 무조건 나를 사랑해 주고 받아주는 다른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우리 삶에서 그런 세상이 허락된 건 아주 잠깐뿐이었다. 바로 아기였을 때다. 그 시절 엄마는 내가 필요로 할 때 늘 내 곁에 있으면서 무한한 사랑을 베풀어 주었다. 그리고 그때는 내가 웃기만 해도 사람들이 행복해했고, 내가 물을 엎질러도, 그건 나를 위험한 상황에 있게 한 어른들의 책임이었다.
 그 시절의 행복이 너무 커서일까? 사람들은 나이가 적든 많든 마음속으로 그 시절의 행복이 다시 돌아오기를 꿈꾼다. 그러므로 성장한다는 것, 어른이 된다는 것은 시간이 필요하며, 현실과 부딪치면서 이러한 꿈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하나씩 하나씩 경험하고, 포기하면서 꿈과 현실 사이의 균형을 잡아가는 과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