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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가 클수록 사랑은 멀어진다- 자기중심적 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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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카페『내 마음을 만지다』p.164-169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선생님, 사랑은 무엇으로 살까요?"
한 학생이 편지로 물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사람은 무엇으로 살아갈까요. 물론 기본적인 육체적 욕구가 충족되어야 하겠지만, 우리가 살아가는 데는 분명 그 이상의 어떤 힘이 필요합니다. 바로 사랑의 힘이 아닌가 싶습니다.
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 등장하는 천사 미하일이 이 지상에 내려와 찾은 답 또한 바로 '사람은 사랑으로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끝없이 사랑을 갈구하고, 사랑을 노래하고, 사랑이란 말로 넘쳐납니다. 하지만 바닷물처럼 넘실대는 사랑이라는 말 속에 빠져 살면서도 모두들 정작 사랑에 목말라하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사랑에 대한 우리의 기대가 너무 커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그대 향한 내 기대 높을수록
 그 기대보다 더 큰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부질없는 내 기대 높이가 그대보다 높아서는 아니 되겠기에
 커다란 돌덩이를 매달아 놓습니다.
 
 그대를 기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서
 기대 따라 행여 그대 잃지 않기 위해서
 
- 고정희, <사랑법 첫째>중에서
 

 왜 사랑은 항상 내 기대에 못 미칠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어도 한없이 쓸쓸하다면 그 원인 중 하나는 그 사람이 내 기대를 채워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기대한다는 것, 그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먼저 이 한 가지를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누구도 나와 같은 존재일 수 없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사랑한다 해도 타인이 나의 기대를 채울 수는 없습니다. 누군가의 지극한 사랑을 받으면서도 늘 어딘가 비어 있다고 느낄 때 문득 깨달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불완전한 인간은 그 누구도 온전한 방식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우리는 그저 자기의 방식대로 사랑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상대가 줄 수 없는 것을 달라고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저 나의 일방적인 기대에 불과합니다. 나 역시도 상대의 기대를 온전하게 채워줄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종종 그 사실을 잊은 채 상대가 항상 나의 기대에 맞춰주기를 요구합니다. 때로는 내가 할 수 없는 일을 상대에게 대신 밀어놓고는 나 자신에 대한 실망과 원망을 그에게 전가하기도 합니다.
 생전에 어머니는 나와 내 딸을 참으로 사랑하셨습니다. 불편하신 일흔의 몸으로 하루도 빠짐없이 손녀를 돌봐주러 집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오셔서는 늘 원치 않는 일만 하셨습니다. 식구도 적은데 날마다 솥 한가득 밥을 해놓으시거나 냄비가 넘치도록 국을 끓여놓으시고는 먹으라고 권하셨습니다. 정작 어머니께 원한 것은 바빠서 치우지 못한 집을 간단히 정리해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는 날마다 다 먹지도 못하는 밥을 가득가득 해놓으시며 오히려 집안일을 더 만들어놓고 계셨습니다. 제발 밥 좀 많이 해놓으시지 말라고, 차라리 아무것도 하시지 말라고 말씀을 드려도 별 소용이 없었습니다.
 일 년이 넘도록 같은 일로 다투다가 어느 날 깨달았습니다. 그것이 어머니의 사랑이라는 것을. 어머니는 당신이 주실 수 있는 것밖에는 줄 수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사랑의 방식임을 어머니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우리는 아무리 상대를 사랑해도 내가 가진 것, 내가 줄 수 있는 것 밖에는 줄 수 없습니다. 그 이후로는 어머니가 해주시는 밥을 감사하게 받았습니다. 그것은 단순히 밥이 아니라 어머니의 사랑의 표현이었습니다. 비록 나의 기대와는 달랐지만 말입니다.
 
상대도 나에게 뭔가를 기대한다
 
우리는 끊임없이 기대합니다. 부모에게, 자녀에게, 친구에게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기대하고 실망합니다. 우리의 언어 습관을 살펴보면 얼마나 자연스럽게 또 일방적으로 기대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어떻게 남편으로서 그 정도밖에 못하니?" "어떻게 선생님이 저럴 수 있지?" "어쩌면 넌 친구라면서 그럴수가 있니?" 등등. 흔히 말하는 어떻게 누구누구가 이럴 수 있는가라는 표현에서 보듯 우리는 누군가에게 기대하기를 당연시하고, 그 기대를 꼭 충족시켜주기를 요구합니다.
 그런데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상대도 나에게 그런 기대를 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영화를 보면서 남성은 영화 속 여주인공의 모습을 자신의 아내나 여자친구에게 기대합니다. 여성 역시 남자주인공의 모습을 자신의 남편이나 남자친구에게 기대합니다. 부모는 부모대로, 자녀는 자녀대로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이때 우리는 상대에 대한 자신의 기대를 쉽게 포기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나에 대한 상대의 기대는 쉽게 무시합니다. 그것은 상대에 대한 지배이지 결코 사랑이 아닙니다.
 
 기대 때문에 사랑을 잃지 않기
 
 나의 기대를 온전하게 채워줄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많은 연인과 부부들이 일방적인 기대로 서로에게 실망하고는 섣부르게 돌아서거나 이별을 고합니다. 이혼을 결심한 어느 젊은 부부 역시 늘 상대에 대한 일방적인 자신의 요구만을 강요하다보니 마주보기만 하면 서로 폭언을 퍼붓기 일쑤였습니다. 그러다가 문학치료를 통해 서로의 기대를 차분하게 글로 주고받으면서 각자 스스로를 성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부부의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는 상대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이혼의 위기에서 벗어났습니다.
 소중한 사랑과 그 사랑의 보금자리를 지켜내는 일은 성을 지키는 것 이상의 힘겨운 싸움입니다. 무엇보다 자신과의 싸움이 가장 힘겼습니다. 나의 기대를 포기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랑할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사랑은 지독한 자기희생이면서 동시에 그만큼 지독한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의 기대 때문에 (상대가 누구든) 소중한 나의 '그대'를 잃는 일이 없도록 우리의 사랑에는 항상 노력이 필요합니다. '내 기대'를 '그대'와 바꾸지 않기 위해, 또한 그대도 '그대의 기대'와 '나'를 바꾸지 않기를 바라며 함께 노력하는 것, 그것이 사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