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에도 동행자는 있다-혼자라는 외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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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카페『내 마음을 만지다』p.92-97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하늘의 별빛이 몇백, 혹은 몇억 광년을 건너 나에게로 오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어쩌면 그 별은 나에게로 오기 전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별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 빛은 우리에게 희망과 아름다움을 선사하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별빛이 없는 암흑의 밤을 상상하면 별과 달이 새삼 고맙습니다. 혹시 그 별은 알까요? 자신이 보낸 그 빛을 몇억년 후 누군가가 바라보며 삶의 소중함과 아름다움과 희망을 찾았다는 것을.
밤의 몽유도원도 속으로 별똥별 하나 진다
몽유도원도 속에 쭈그리고 앉아 울던 사내
천천히 일어나 별똥별을 줍는다
사내여, 그 별을 나를 향해 던져다오.
나는 그 별에 맞아 죽고 싶다
- 정호승, <별똥별>
나는 언제나 혼자가 아니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이 되던 해, 그에 대한 다큐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다큐에 에릭의 이야기가 잠시 소개되었습니다. 에릭은 우울증으로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살 직전 우연히 모차르트의 노래를 듣게 되었습니다. 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에 듣게 된 모차르트의 음악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는 자살을 포기했습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더 듣고 싶은 마음에 다시 살고 싶어진 것입니다. 에릭은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생명은 축복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울증도 치료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에릭은 친구가 에이즈로 죽거나 사랑하는 가족이 죽음을 맞이하는 등 여러 차례의 고통스런 순간들을 맞이했는데, 그때마다 모짜르트에게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가 모차르트에게 편지를 쓰면 그는 내게 음악으로 답장을 해줍니다. 내가 모차르트라고 말할 때 그는 모차르트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모차르트는 내게 하나의 메타포(은유)입니다.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 희망, 행복, 기쁨의 은유입니다."
에릭은 그의 마음 속 열정과 고통과 외로움을 함께 나누기 위해 250년 전 존재했던 모차르트에게 '보내지 않는 편지'를 씁니다.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충동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그 후 이어지는 생의 고통스런 순간들을 헤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삶의 중요하고 절실한 순간에 듣고 기억하는(읽는) 시 한 구절, 음악 한 소절은 우리의 내면에서 우리를 초대하는 목소리입니다. 이 시를 읽을 때 우리는 단순히 글자에 목소리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영혼에 목소리를 주는 것입니다. "내 안 깊은 데서 소리치는 외침에 대해 한 마디의 대답도 듣지 못하는 것, 그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라고 니체는 말합니다. 부치지 않는 편지로 대화하면서 에릭이 만난 것은 모차르트가 아니라 바로 자신속에 잠재된, 진정 '살아 있고 싶어서 죽고 싶었던'자신의 생명력이었습니다. 그렇게 에릭은 잠재되어 있던 자신의 삶의 의욕을 되찾은 것입니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별에 맞아 죽고 싶을"만큼 살고 싶은 내 가슴에 별똥별이 떨어지는 날을 소망하며 기다립니다.
나도 어둠 속 어디선가 나의 별을 주워보렵니다. 그 빛이 몇 광년을 거쳐 내게 왔든. 아니면 바로 지금 내 곁에서 빛나는 작은 꼬마별이든 그 빛과 동행하며 나도 작은 별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슬픔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모습으로 당신 눈앞을
가로막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삶이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의 손을 꼭 잡고 있다는 것을. 결코 당신의
손을 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중에서
하늘의 별빛이 몇백, 혹은 몇억 광년을 건너 나에게로 오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습니까? 어쩌면 그 별은 나에게로 오기 전에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 별이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그 빛은 우리에게 희망과 아름다움을 선사하며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해줍니다. 별빛이 없는 암흑의 밤을 상상하면 별과 달이 새삼 고맙습니다. 혹시 그 별은 알까요? 자신이 보낸 그 빛을 몇억년 후 누군가가 바라보며 삶의 소중함과 아름다움과 희망을 찾았다는 것을.
밤의 몽유도원도 속으로 별똥별 하나 진다
몽유도원도 속에 쭈그리고 앉아 울던 사내
천천히 일어나 별똥별을 줍는다
사내여, 그 별을 나를 향해 던져다오.
나는 그 별에 맞아 죽고 싶다
- 정호승, <별똥별>
나는 언제나 혼자가 아니다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이 되던 해, 그에 대한 다큐를 본 적이 있습니다. 그 다큐에 에릭의 이야기가 잠시 소개되었습니다. 에릭은 우울증으로 자살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살 직전 우연히 모차르트의 노래를 듣게 되었습니다. 생의 마지막이라고 생각한 순간에 듣게 된 모차르트의 음악은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는 자살을 포기했습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더 듣고 싶은 마음에 다시 살고 싶어진 것입니다. 에릭은 이렇게 아름다운 노래를 들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생명은 축복임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우울증도 치료가 되었습니다.
그 후로도 에릭은 친구가 에이즈로 죽거나 사랑하는 가족이 죽음을 맞이하는 등 여러 차례의 고통스런 순간들을 맞이했는데, 그때마다 모짜르트에게 편지를 썼다고 합니다. 그는 말합니다.
"내가 모차르트에게 편지를 쓰면 그는 내게 음악으로 답장을 해줍니다. 내가 모차르트라고 말할 때 그는 모차르트 이상의 의미를 가집니다. 모차르트는 내게 하나의 메타포(은유)입니다. 삶의 가장 아름다운 것들, 희망, 행복, 기쁨의 은유입니다."
에릭은 그의 마음 속 열정과 고통과 외로움을 함께 나누기 위해 250년 전 존재했던 모차르트에게 '보내지 않는 편지'를 씁니다.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표현함으로써 우울증으로 인한 자살 충동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그 후 이어지는 생의 고통스런 순간들을 헤쳐 나올 수 있었습니다.
삶의 중요하고 절실한 순간에 듣고 기억하는(읽는) 시 한 구절, 음악 한 소절은 우리의 내면에서 우리를 초대하는 목소리입니다. 이 시를 읽을 때 우리는 단순히 글자에 목소리를 입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영혼에 목소리를 주는 것입니다. "내 안 깊은 데서 소리치는 외침에 대해 한 마디의 대답도 듣지 못하는 것, 그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이라고 니체는 말합니다. 부치지 않는 편지로 대화하면서 에릭이 만난 것은 모차르트가 아니라 바로 자신속에 잠재된, 진정 '살아 있고 싶어서 죽고 싶었던'자신의 생명력이었습니다. 그렇게 에릭은 잠재되어 있던 자신의 삶의 의욕을 되찾은 것입니다.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별에 맞아 죽고 싶을"만큼 살고 싶은 내 가슴에 별똥별이 떨어지는 날을 소망하며 기다립니다.
나도 어둠 속 어디선가 나의 별을 주워보렵니다. 그 빛이 몇 광년을 거쳐 내게 왔든. 아니면 바로 지금 내 곁에서 빛나는 작은 꼬마별이든 그 빛과 동행하며 나도 작은 별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슬픔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거대한 모습으로 당신 눈앞을
가로막더라도 놀라지 마십시오. 그리고 믿어야 합니다. 삶이 당신을
잊지 않았다는 것을. 당신의 손을 꼭 잡고 있다는 것을. 결코 당신의
손을 놓지 않으리라는 것을.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