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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나를 볼 수 없게 되었다 - 감정표현과 자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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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카페『내 마음을 만지다』p.75-80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나는 엄마가 언제라도 나를 볼 수 있는 유리로 된 집에서 살았어요. 하지만 유리로 된 집에서는 나를 버리거나 땅 속으로 나를 숨기기 전에는 어떤 것도 감출 수가 없어요. 그런데 땅 속으로 나를 숨기기 전에는 어떤 것도 감출 수가 없어요. 그런데 땅 속으로 나를 숨기고 나면 나도 나를 볼 수 없게 되어요."
 심리학자 엘리스 밀려Alice Miller 가 만난 한 내담자의 말입니다. 이처럼 누군가의 검열과 비난에 노출되어 산다는 것은 참으로 끔찍한 일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어떤 책망이나 비난, 혹은 수치심에 대한 두려움 없이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인정합니다. 즉 자신의 감정과 느낌이 무엇인지 바로 알고, 자신이 진정 그것을 원한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녀를 사랑이라는 이름의 유리 상자 속에 가둬놓고 하나하나 검열하며 키웁니다. 아니 이제는 나 스스로 그렇게 자신을 검열하며 살아갑니다.
 
진정한 나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내 속에서 솟아나오려는 것. 바로 그것을 나는 살아보려고 했다. 그것이 왜 그토록 어려웠을까?"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이 말은 좀 더 정확하게 나의 참자아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님을 말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내면의 목소리는 왜 그렇게 듣기 어려울까요? 나의 참자아가 내면의 감옥에 묻혀버렸기 때문일까요? 내가 누군가로부터 숨어서 땅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면 나의 참자아는 나 자신도 볼 수 없게 사장되어버립니다. 그래서 브래드쇼는 "우리가 다른 사람들로부터 숨는다는 것은 우리 자신으로부터 숨는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나의 참자아는 무의식적으로 내면의 감옥에 남아 발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자신의 참자아와 대화를 할 수 없게 됩니다. 밀러는 어두운 땅 속, 즉 무의식 속에 숨어버린 '내'가 해방된 후에야 자아는 명확하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 시작하고 자존감을 회복한다고 말합니다.
 
아버지, 어머니가 본능적으로 나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나는 알고 있다.
그들은 덩치 크고 털이 많고 지저분한 발로 집 안에 드나들게 빤한 개를 집에 두기 망설이는 것처럼 나를 집에 들이기를 꺼려한다. 그래, 그 개는 모든 사람에게 거치적거리고, 짖는 소리도 아주 큰, 불결한 짐승이다. 그 짐승에게는 사람의 영혼이 있다. 게다가 다른 개와 달리 아주 예민해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다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내가 개라는 것을 인정하기로 했다. 바로 그 개가 나다. 나는 그 개의 길을 택했다. 개로 남아 있을 것이고 가난할 것이고 화가가 될 것이다.
 
- 빈센트 반 고흐,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1883년 12월)
 
 감정의 상실은 어린 시절 자신을 충분한 사랑으로 보살펴주는 부모나 양육자가 없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건강한 가정에서는 아이의 느낌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받아줍니다. 건강한 자기 느낌이란 우리가 느끼는 감정과 욕구가 우리 자신의 것임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원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는 사람은 힘과 자존감을 얻습니다. 그들은 부모나 어른들을 실망시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 없이 자신의 감정을 느끼고 그 감정과 욕구를 표현합니다.
 반대로 어린 시절 학대를 당하거나 방치된 사람들은 이런 능력을 상실하게 됩니다. 자신의 정서와 느낌, 생각이 무시되거나 비난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수치스럽게 여겨 스스로 억압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인이 되어서도 자신의 진정한 느낌과 감정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들은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내면의 검열관이 인정하는 느낌만을 허락하게 됩니다. 밀러는 우울증과 내적 공허감은 그들이 그 통제력을 가지기 위해 치러야만 하는 대가라고 말합니다.
 
내 자신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느낄 때
 
삼십대 어느 분은 "내가 없는 것 같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몹시 부끄러움을 타요. 그런데 또 어떤 때는 부끄러움을 숨기려고 더 적극적인 체해요. 둘 다 내 모습이 아닌 것 같아요. 내 모습이 어떤 건지 나도 모르겠어요. 그냥 내가 없는 것 같아요. 항상 누군가의 눈치를 보는 것 같고, 긴장해 있고,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자신감도 없고 겉돈다는 느낌이예요."
 심리치료사 오크랜더Violet Oaklander는 이처럼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 상태"를 낮은 자존감이라고 말합니다. 변화란 자기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되려고 노력할 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참된 자기 자신이 될 때 가능한 일입니다. 자기 자신에 대해서 좀 더 긍정적으로 느끼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야 하며, 무엇보다 자신이 현재 느끼는 감정들을 수치심 없이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생각과 감정을 맘껏 표현하지 못하고 억압하면 자존감은 자라날 수 없습니다. 때로 보잘것없거나 허황되며 절망적인 감정이라도 비난과 두려움 없이 자유롭게 표현해야만 그런 감정들을 탐구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감정과 느낌, 신체 그리고 그것들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에 다시 친숙해질 수 있습니다. 더불어 타인의 판단을 통해서가 아니라 내면으로부터 있는 그대로의 자기 자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자존감이 생기는 것입니다.
 
왜 상처를 표현하지 못할까?
 
 엘리스 밀러나 페니베이커도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상처가 아니라 이를 표현할 수 없는 데 있다고 말합니다. 고통을 당하면 그 고통을 확인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절망하는 이유 중 하나는 나만 홀로 당하는 고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상처를 받았다고 해도 곁에서 누군가가 그 상한 마음을 공감해주고, 그 감정을 풀어나가도록 도와주면 수치심에 묶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시나 문학은 우리가 스스로 표현하지 못한 여러 정서, 느낌, 감정을 나의 문재처럼 표현해주고 공감해줍니다. 이런 공감 능력을 동일시 원칙 Iso-Principle이라고 말합니다. 시는 두 지점, 즉 작가와 독자 간의 가장 짧은 감정적 거리입니다. 그래서 시인이며 작가인 도빈스Stephen Dobyns도 "시는 사람들 사이에 걸린 창이다. 그 창이 없었다면 사람들은 어둠에 갇혀 살고 있을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이 광대한 세계에서 단절된 혼자가 아니며, 세계의 모든 존재들에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는 일은 우리의 자존감을 키워줍니다.
 가끔 '나는 살기 위해 죽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생각합니다.
그동안 유리로 된 집에 살면서 땅 속 깊은 곳에 도망가 숨어버린 나의 목소리, '살기 위해 죽어버린'내 목소리를 찾아 해방시키고 싶습니다. 그런 날이면 시집을 들고 좋아하는 장소에 앉아 마음의 문을 열어보십시오. 그리고 나를 위한 나만의 일기장에 시를 써보십시오. 그렇게 숨은 감정들을 두려움 없이 일기장에 해방시켜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