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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아프다고 말하지 못할까?-상처의 대물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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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카페내 마음을 만지다』p.22-24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나보다 더 약한 상대를 희생자로 삼는다
 
 어떤 부모도 자신의 질병을 자녀에게 대물림하고 싶지는 않을것입니다. 그 누구도 독감에 걸렸을 때 자녀 앞에서 대놓고 재채기를 하거나 기침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떤 부모도 자녀의 입에 일부러 담배연기를 불어넣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독감 균보다, 담배연기보다 더 치명적인 파괴적 언어의 독을 아이들 앞에서 재채기처럼, 담배연기처럼 마구 쏟아내고 뿜어냅니다. 내가 들었던 더없이 끔찍한 말들을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고스란히 그 누군가에게 다시 퍼부어대는 것입니다. 내가 가장 싫어했던 부모의 잔소리나 비난을 무의식중에 나의 자녀에게 똑같이 반복하는 경우는 아주 흔한일입니다.
 우리는 내가 받았던 유형, 무형의 폭력을 그 누구에게 다시 휘두릅니다. 이때 그 누군가는 나에게 다시 복수할 힘이 없는 안전한 상대, 즉 나보다 연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녀보다 더 연약한 존재들은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악은 무엇보다 부모에게서 (사실은 우리가 누구보다 먼저 보호해주어야 할) 자녀에게로 대물림됩니다. 그리고 외부에서 복수의 대상을 찾지 못한 경우 사람들은 스스로에게 복수를 합니다. 누군가가 나를 찌른 칼을 뽑아서 다시 내가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것입니다. 이는 곧 우울증이 되고 자존감을 바닥으로 내동댕이칩니다. 프랑스의 철학자 폴 리쾨르 Paul Ricoeur는 "돌출된 악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악"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치료를 받아야 하는 이유는 나의 문제 때문만이 아닙니다. 나를 병들게 한 그 불행이 그대로 그 누군가에게 대물림되기 때문입니다. 치료받지 못한 희생자인 내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 가해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먼저 건강해져야 한다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 정신분열증에 걸린 어머니가 자주 발작을 일으키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예고 없이 발작을 일으키는 어머니를 바라보며 아이는 매번 공포에 질렸지만 어머니의 그런 행동에 대해 누구에게도 설명을 듣지 못했습니다. 소년은 자라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딸아이에게 아주 무서운 이야기를 들려주기를 좋아하는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그는 두려워하는 어린 딸의 모습을 보며 웃었습니다. 그리고는 "무서워하지 않아도 돼. 이건 꾸며낸 이야기야. 아빠가 곁에 있잖아"라고 위로해주었습니다.
 이 아버지는 딸을 정말 보호해주는 다정한 아버지일까요? 그는 "자기 아이의 두려움을 교묘히 조종하면서 자신이 강해지는 것을 느끼는 것"이라고 심리학자 엘리스 밀러Alice Miller는 말합니다. 그의 의식적인 소망은 자신에게 박탈되었던 것, 즉 보호와 위로, 공포에 대한 설명을 딸아이에게 베푸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이 아버지가 무의식적으로 아이에게 전해준 것은 바로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두려움과 재난의 예측 그리고 대답을 듣지 못한 질문의 대물림이었습니다.
 "왜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이토록 두렵게 하는거지?"
 그래서 우리에게 치료가 필요한 것입니다. 부모 자신이 먼저 과거 속 고통의 거미줄을 거두어내고, 자신과 자신의 행복을 전적으로 책임질 수 있도록 건강하고 성숙해져야 합니다. 나는 불행하면서 자녀에게 행복하라고 말할수는 없습니다. 부모가 먼저 행복하면 자녀는 자연히 행복해집니다. 나의 고통을 가장 사랑하는 자녀와 가족, 또는 그 누군가 무고한 사람에게 반복해서 전파하는 불행한 존재가 되지 않기 위해서도 우리는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페스탈로치의 말대로 "당신은 당신의 정원에서 악마를 쫓아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악마를 당신 아들의 정원에서 다시 발견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