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아프다고 말하지 못할까? -상처의 대물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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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글은 이봉희 교수의 문학치유카페『내 마음을 만지다』p.19-21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영화 <다크나이트>를 보면 악의 상징인 조커가 등장합니다. 그는 자신과 같은 고통을 당하면 그 누구라도 자신과 같은 악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합니다. 시민들의 희망인 고담 시의 하비덴트 시장은 그런 조커에게 희생되고 맙니다.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서 조커와 똑같은 악의 화신이 되는 것이지요. 영화에서 드러나는 하비텐트의 이중적인 얼굴, 즉 반은 손상되기 이전의 온전한 모습, 나머지 반은 화상을 입고 괴물로 변한 그 얼굴은, 조커가 원하던 대로 괴물과 싸우다 괴물이 되고 만 안타까운(그러나 너무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육체적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 건강의 중요성이 일깨워지면서 상담과 치료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의료 전문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분야뿐 아니라 자가치료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특히 미술, 음악, 연극 등 예술치료에 이어 문학치료와 글쓰기치료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지요. 하지만 아직도 많은 사라들이 왜 이런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해 거부감을 드러냅니다. 나는 아프지 않은데, 치료 따위가 왜 필요하냐는 것이지요.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자연스럽게 관계의 문제로 고통 받는 경험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피할 수 없는 이 고통스런 관계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발견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악하기 이전에 심히 병들었다는 것, 가해자는 가해자가 되기 이전에 먼저 피해자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그렇게밖에 살아남는 법을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저 사람은 거짓말을 밥 먹듯 한다고 말합니다. 참 슬픈말입니다. 이 말에는 그냥 거짓말을 쉽게 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저 사람은 거짓이 생존의 수단(밥)이라는 뜻이며,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달리 살아가는 법을 모르는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그도 가해자이기 이전에 하비텐트처럼(그리고 조커처럼)피해자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악의 승리는 상대의 파멸, 또는 선의 파멸이 아니라 상대를 또 다른 악으로 만든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나는 ‘흡혈귀론’이라고 말합니다. 흡혈귀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 단순히 누군가를 죽게 하지 않습니다. 흡혈귀는 자기에게 물린 자를 또 다른 누군가를 희생시켜야만 살 수 있는 상태, 즉 자신과 똑같은 또 하나의 악으로 만들고야 맙니다. 이렇게 악은 대물림되듯 연속적으로 이어집니다. “괴물과 싸우는 자는 괴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히라”는 니체의 말은 이런 의미에서 진정한 승리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합니다. 문제는 사람들이 자신이 병들었음을 알지 못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 병을 전염시키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이성복 시인의 말처럼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은)”것과 같습니다. 그날 태연한 나무들 위로 날아오르는 것은 다 새가 아니었다. 나는 보았다 잔디밭 잡초 뽑는 여인들이 자기 삶까지 솎아내 는 것을, 집 허무는 사내들이 자기 하늘까지 무너뜨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새 점 치는 노인과 변통의 다정함을 그날 몇 건의 교통사고로 몇 사람이 죽었고 그날 시내 술집과 여관은 여전히 붐볐지만 아무도 그날의 신음 소리를 듣지 못했다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 이성복, <그날>중에서